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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ypical Case of Corporate Raiding

Wednesdaykid 2013. 4. 2. 01:35



도대체 4000억원이란 거액이 어디로 갔을까?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 옛 부하직원에게 4000억원대 재산을 맡겼다가 빼앗겼다며 소송을 제기, 돈의 행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또한 '재계 2세의 공격경영과 외환위기. 고의부도와 재집권 시나리오. 그 사이 자금관리를 맡았던 2인자의 변심. 벼랑에 내몰린 구사주의 형사고소'로 이어진 드라마 같은 고소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1990년대 재계순위 24위까지 올랐던 진로그룹 장진호 전 회장(61)이 자신의 재산관리인 오모씨(54)를 검찰에 고소함에 따라 진로그룹 파산 뒤에 묻혀있던 비망록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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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소사건의 시작은 지금부터 12년 전인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대회장 타계 후 '기업은 성장과 발전을 하지 않으면 소멸될 뿐'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다방면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던 진로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 등 재계의 자금경색으로 부도 위기에 몰렸다. 그해 정부의 부도유예협약에 따라 정상화 대상에 선정됐지만 같은 해 9월 석연치 않게 부도를 냈고 일부 계열사는 법정관리로, 일부는 금융권과 화의형태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었다.


 1999년말 진로쿠어스맥주를 OB맥주에 내주고 2000년 2월 진로발렌타인을 해외기업에 매각한 장 전회장은 그룹 주력사인 진로를 뺏길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경영권을 방어할 계획을 세운다. 화의 중이던 진로의 부실채권들을 사모아 최대 채권자가 되고 법정관리 후 이를 출자전환형식으로 주식으로 바꿔 '재집권'하는 시나리오였다. 장 전회장은 그때까지 개인 소유였던 고려양주 주식을 담보로 일단 15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이어 금융권 차입을 더해 897억원을 마련하고 진로의 부실채권을 사들이기로 했다. 당시 진로 법정관리인은 "진로발렌타인의 매각대금 등 회삿돈 1190억원 상당이 부실채권 매입에 들어갔다"며 장 전회장을 고발한 바 있어 이같은 정황을 뒷받침한다.


 장 전회장은 이 계획을 '심복'을 통해 실행하는데, 그룹 사업구조조정실 재무팀장(이사)이었던 오씨에게 맡겼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장 전회장은 고소장을 통해 "당시 구조조정 초기에 우호적이던 골드만삭스가 적대적으로 돌변해 경영권을 뺏으려는 시도를 했다"며 "기업회생 및 경영권 방어를 위해 부실채권을 매집했다"고 설명했다. 자문역할을 해주던 골드만삭스가 진로의 흑자도산 상태를 알아채고 진로채권을 매집, 채권자로 돌변하자 장 전회장 측이 이같은 방어대책을 세웠다는 얘기다. 장 전회장의 재매입 계획에는 차명회사가 동원됐다. 장 전회장의 지시를 받은 오씨는 H사와 C사 등 4~5개 구조조정 전문회사를 동원했고 부실채권 매입과 관리를 전담했다고 한다.

 오씨 위로 부사장급 임원이 있었음에도 장 전회장은 직접 오씨에게 부실채권 매집을 지시했다. 장 전회장은 진로가 법정관리를 거쳐 하이트맥주에 매각된 2005년까지 5년여 동안 이자수익, 거래내역을 보고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오씨를 믿은 것이다. 당시 상황에 밝은 관계자는 "그때 부실채권은 액면가의 10% 안팎 현금으로 매입할 수 있었다"며 "진로는 부실회사였지만 채무이자를 꼬박꼬박 내던 터라 장 전회장이 회사를 되찾기 위해 고의부도를 냈다는 소문도 있었다"고 말했다.

 장 전회장 계획은 58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 매입에 성공하면서 일면 구체화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듬해 계획은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2003년 9월 장 전회장이 대검찰청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의 수사로 구속되면서 장 전회장이 이를 챙길 수 없게 됐다. 이 과정에서 장 전회장을 대리했다는 오씨가 그동안 매입해놓은 5800억원 규모의 채권 중 4000억원어치를 제3자에 처분했다는 것이 장 전회장의 고소 취지다.

 이 채권은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하겠지만 여러 과정을 거쳐 대한전선그룹이 계열사를 통해 사들였을 개연성이 높아보인다. 당시 대한전선의 실무를 이끌던 임모 전부회장은 진로 부실채권 투자로 수천억 원의 차익을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대한전선은 이를 계기로 사업 외 투자를 시작해 2007~2009년 한때 '재계의 사모펀드'로 불리기도 했다.

 장 전회장은 자신의 손발이 묶여있는 동안 대리인이 차명재산을 임의로 처분했다고 주장한다. 장 전회장의 고소장에는 해당 부실채권의 임의 처분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사기에 해당한다고 기록돼 있다. 그는 오씨가 현재 대표로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 K사도 2007년 자신의 돈으로 인수한 차명회사라고 주장한다. 진로는 이후 하이트그룹이 사들였다. 맥주시장 1위였던 하이트는 시장을 과점한 진로를 3조원대에 사들여 주류업계를 평정했고 그 과정에서 채권자였던 골드만삭스와 대한전선 등은 수천억 원대 차익을 올렸다.

 장 전회장의 한 측근은 "장 전회장이 최근에야 오씨의 불법사실을 알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외에 머물고 있는 장 전회장이 최근까지 오씨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장 전회장이 제기한 고소 사건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그동안 재산반환이나 법적 대응을 하지 않은 경위에 대해서도 사실규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장 전회장의 고소내용이 사실이라면 오씨가 과연 4000억원대 거액 자금을 어디에 보관하고 있을지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장 전회장의 고소에 대한 오씨의 대응 역시 주목된다. 피고소인 신분이 된 오씨 역시 검찰 수사에서 진로의 부실채권 매집과 관련해 구체적인 해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